*구약 스가랴 3장
==환상 가운데 등장하고 있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종교 의례적으로 불결(不潔)하고 부정(不淨)한 상태에 있었고, 야웨의 천상의 어전회의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사탄('비난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 이런 상태에 있었던 여호수아를 비난하고 정죄(定罪)한다. 그러나 야웨는 여호수아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는 여호수아를 야웨가 계획하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자신의 도구로 바라보신다. 그리고 천상의 왕이신 야웨의 궁전에 있는 다른 모든 참석자들에게도 그렇게 여호수아를 바라보도록 요구하신다. 잠시 후 야웨께서 그의 천상의 종들인 천사들에게 여호수아의 부정하고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답고 새로운 의관(衣冠)을 갈아 입히시고 씌우도록 명하신다. 죄의 제거와 용서, 그리고 새로운 임무의 위탁을 가리키는 상징성을 지닌 행위였다.
스가랴 3장 1-5절: 법정에 선 여호수아
여호수아가 천상의 법정에 서있다. 마치 죄수처럼 더러운 옷을 입고 말없이 서있다.
환상에 기록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는 천상(天上)에 자리잡고 있는 야웨의 어전(御殿)이며, 특별히 그 안에서 열리고 있는 법정임에 틀림없다. 본문에 의하면 '비난자', '고발자', 혹은 '대적자'란 의미를 지닌 사탄 역시 야웨의 법정에 출석하여(예, 욥 1:6-12) 여호수아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비난하고 정죄하고 있다(참조, 시 109:6). 무엇을 비난하고 있는 것일까? 왜 여호수아는 천상의 법정에서 사탄의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일까?
사탄에 의하면 여호수아는 대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기에 적합치 못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사탄의 도전은 여호수아라는 한 개인에 대한 비난이기 보다는 여호수아를 대제사장직에 임명한
'임명권자'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특별히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천상의 어전에서 천사들 앞에 함께 '서있는' 장면은 마치 제사장이 성전에서 봉사하기 위해 '서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예, 신 10:8; 대하 29:11; 겔 44:15). 따라서 사탄이 공격하고 있는 것은 여호수아 개인이 아니라 그가 맡고 있는 대제사장 직분 자체인 것이며 그 임명 행위 뒤에 있는 임명권자에 대한 공격인 것이다.
사탄은 여호수아가 대제사장으로서 부적격하다는 증거로 그가 입고 있는 더럽고 불결한 대제사장 의복을 지적한다. 증거물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를 가리켜 마치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 조각이라고 부르는 대목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그로 대표되는 예루살렘을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참조, 암 4:11)이라고 부른다. 여호수아의 개인적 삶을 살펴보아도 그의 삶은 불 가운데서 끄집어낸 나무토막이라 할 수 있다.
사탄은 탁월한 비난자답게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옷'을 벗기려 하는 중이었다. 요즈음 말로 그를 면직(免職)시키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직분에 대해 사탄은 잘못된 정보를 동원하여 그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것이었다. 임명권자인 야웨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기도 하였다.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일은 종종 새로운 삶, 새로운 사명,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대제사장으로서 여호수아는 그의 백성들을 대표하여 그들의 더러운 죄들을 짊어졌지만, 그래서 억울하게 사탄으로부터 비난받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새 옷을 입혀주심으로써 그 백성들이 죄가 사함을 받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명이 주어지고 있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신다.)
***메시야란 말은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는 왕, 선지자, 제사장을 세울 때는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모두 메시야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새롭게 임하실 약속된 메시야의 표상(모형)이었습니다.
물론 인간의 부정과 불의함에서 나온 불충스런 메시야들이 있었지만
직분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순전하게 이행할 메시야를 예표하고 있었습니다.
'왕'이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맡겨진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이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백성의 편에 서서 속죄를 위한 중보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하나님 편에서 백성들을 지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사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아담 안에서 왕, 제사장, 선지자의 세 직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나라인 에덴동산에서 유일한 통치자였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대신한 왕으로 그 나라를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세움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연만물에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기도 하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 피조물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이기도 했습니다.
그후 이 직분은 노아와 아브라함에게서도 발견됩니다.
그리고 모세 시대에 와서 제사장직을 아론이
그리고 왕과 선지자직은 모세가 갖게 됩니다.
점차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탄생되면서
왕직과 제사장직과 선지자직으로 세분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래 메시야라고 할 때는 왕, 제사장, 선지자의 3중직을 의미하며,
진정한 메시야를 바라볼 때는 이 3중직을 온전하게 수행하시는 분을 의미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메시야는 오직 아담에게 약속된 후손(씨)으로서
"성실과 정의"(8:8)로 그의 나라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의와 열심'을 전혀 배제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법제와 인간이 엮어낸 행정체계를 초월합니다.
그리고 그 어떠한 반대 세력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상의 정의와 평화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가랴는 왕이신 메시야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슥9:9-10).
새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결코 그 어떠한 불의라 할지라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불의를 깨뜨리실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공의를 이루실 분입니다.
그의 공의로움에 힘입어 그의 백성들에게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시며
겸손함으로 순전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점이 세상에 있었던 왕들과 다릅니다.
세상의 왕들은 불의할 수 있었으며,
온전히 백성들을 죄악의 댓가인 죽음에서 구원해 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겸손하지 못해 교만하고 포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새 나라의 왕이신 메시야에게서는 그러한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의 나라는 군대나 폭력으로 이루어지거나 유지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말과 병거와 활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높은 말 위에 앉아서 호령을 했고 군림을 했습니다. 그럴지라도 결코 그의 나라와 백성을 온전하게 구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의 왕국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를 것입니다.
이 나라는 다시는 외적으로부터 침노를 당하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친히 왕이 되시는 나라입니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14:9)라는
스가랴의 선포와 같이 하나님 한 분 만이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메시야의 왕국은 곧 하나님의 나라이며
메시야는 하나님을 위해 그 나라를 완성하는 사역을 위해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메시야에 의해 세워질 그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계시가 충분히 드러나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야가 곧 계시의 정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메시야는 계시의 실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야는 계시 그 자체 입니다.
그가 오심이 곧 계시의 완성이자 계시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그의 행하시는 모든 행위가 또한 계시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까지도 물론 계시입니다.
이처럼 메시야는 계시로서 밝히 드러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야가 오는 날에는 더 이상 선지자가 필요없습니다.
"그날에 더 이상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각 부끄러워 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않을 것이며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13:4-5).
===선지자는 주께서 주신 계시를 전달하는 종인데
계시이신 그분이 직접 오셨으므로 전달자는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메시야 앞에서 계시를 보여준다고 하는 것은
계시를 감추거나 방해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메시야는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이십니다(마 5:17).
따라서 그가 오심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메시야가 임할 때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하게 됩니다.
메시야를 앎으로써 하나님을 알게 되고
메시야를 본 것은 곧 하나님을 본 것과 같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완성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됨으로써 그의 나라는 공의와 성결로써 가득찰 것입니다. 그래서
스가랴는 "그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14:20)고 선포합니다.
곧 모든 속된 것까지라도 메시야의 나라에서는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어느 것도 속되다고 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든 주발까지도 성별되어 쓰임을 받을 것입니다. "그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14:21)는 말과 같이 그 나라에는 결단코 죄와 저주 아래 있는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창 9:25; 레 18:24; 신7:2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와 지식으로 이루어진 그 나라에서는 모든 기구까지도 성결하며, 모든 백성들도 온전한 상태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오직 메시야 한 분으로 충분하며 만족한 삶을 또한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분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양식이 될 것이며
그분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 모든 삶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진정 새 나라의 유일한 왕(The King)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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